김영애가족치료연구소

한국사티어가족상담교육원(백업) 

언니와의 관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상담 댓글 0건 조회 4,352회 작성일 09-09-10 09:44

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79년생 여성입니다. 한 살 많은 오빠가 하나 있고, 저와 쌍둥이인 언니가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 상담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성장과정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언니와 저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약했지만 병원 시설이 열악해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100일이 됐을 때 제가 경기를 일으켰고,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저를 보살피기 위해 오빠를 외갓집에 맞기셨고, 그렇게 오빠는 10년 동안 외가에서 지내다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에게 저는 늘 걱정거리였고, 제 문제로 많이 다투시기도 했습니다. 약해도 강하게 키워야 한다, 다른 자식과 차별 하지 마라시던 아버지와 오빠, 언니보다 늘 뒤쳐지는 제 걱정에 잠도 못 이루시던 어머니의 갈등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등교거부아였던 것 같아요. 실재 아프기도 했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도 많이 했습니다. 신경이 약해 성장 하면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먹었습니다. 살이 쪘고, 공부 잘하고 예뻐서 인기 많은 언니와 비교 되는 게 참 싫었습니다. 친구는 늘 한 학년에 한 두 명, 수학여행이며 졸업여행이며 캠프며 절대 참석 거부, 공부는 겨우 중간을 유지하는 정도?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 역시 그때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면 싫다고 할 것이고요.
 부모님이 그런 제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자연히 오빠와 언니는 부모님 사랑에 목말라 했고, 저는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싸우시면 웃음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오빠와 언니에게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웃으며, 양보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장남인 오빠와 제 사이에 있던 언니는 그런 상황을 많이 억울해 했고, 저를 질투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는 ‘착한 척 하지 말라’거나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거나 ‘당장 방에서 나가라’는 등의 심한 폭언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늘 미안하다, 잘못했다며 언니의 기분을 맞추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늘 오빠와 언니에게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 모두 얼마나 두 사람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지 알려 주기 위해, 부모님이 두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나 주변 사람들이 칭찬한 이야기를 전하곤 했고, 저 역시 그런 오빠, 언니가 얼마나 좋고 부러운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장남으로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오빠와 뭐든 알아서 잘 하는 믿음직한 딸이었던 언니를 많이 부러워하고 질투하였습니다. 특히 언니는 제게 질투를 넘어선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습니다. 언니처럼 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서로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다 보니 마음의 벽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언니와 저는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비록 둘 다 첫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는 자타공인 단짝친구가 되었지요. 저는 제 열등감이 문제라 여겨 그것을 해소시키려 많이 노력하였고, 언니 역시 어렸을 당시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였습니다. 학교가 달라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저는 주말이면 언니가 있는 곳에 찾아가 함께 지냈습니다.
 그 후, 언니는 미국 1년, 프랑스 1년의 어학연수를 다녀와 현재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으며, 저는 전문대, 4년제 편입을 거치며 졸업을 해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문제 상황

 언니는 1년 전 프랑스에서 돌아와 저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생긴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원래 그 곳에서 대학원 입학을 원했으나 시험에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언니는 많이 좌절했습니다. 그런 언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저는 괜찮다고 한국에서 공부한 후 다시 나가면 된다고,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가족들도 언니를 많이 그리워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었습니다.
 사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마음이 여린 언니는 외국에 있을 때도 자주 우울해 했고, 저는 그런 언니를 위해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라면박스 안에 가득 선물을 넣어 소포를 보내고,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오는 언니의 전화를 거의 매일 받았으며,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메일을 보냈습니다. 언니는 많이 고마워했고, 저로 인해 힘이 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힘들어 하는 언니를 보며 정말 언니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진심으로 잘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언니가 돌아오니 힘들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생활이 있었고, 특히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을 때 기꺼이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니의 입장에서 늘 생각해주던 것 보다 신경 써 주지 못했습니다.
 언니는 그런 제게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동기들은 모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서 친구 하나 없었던 언니는, 저만 바라보며 집에서 남편 기다리는 부인처럼 ‘언제 들어오느냐, 왜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하지 않느냐’고 했고, 무엇이든 함께 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언니의 제 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되도록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언니는 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가 조금이라도 소흘하다 싶으면 굉장히 섭섭해 하며 자신의 상황을 자존심 상해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저는 제 생활에 지쳐 언니의 감정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저 때문에 더 우울해지는 언니를 보게 되면 미안해졌고, 사과하며 피곤한 상황임에도 언니를 위해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등 오버하며 언니의 기분을 맞춰주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제 솔직한 감정을 느껴서인지 언니는 더욱 우울해 진 것 같습니다. 신경성 위염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불안해했습니다. 저 역시 걱정이 되어 월급을 털어 언니를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습니다.
 다행히 우울증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종합 심리 검사를 통해 언니가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고,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고 싶어 했던 마음을 아직 충족시키지 못해 유아기적 특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기대나 사랑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우울함을 선택해 자신을 방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언니 말로는 자신이 에전 주말 드라마인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같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언니는 오히려 편안해졌고, 우울함도 덜 해졌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습니다.
 사건은 언니가 프랑스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귀국하여 우리 집에 잠시 머무는 사이 일어났습니다. 친구 없이 쓸쓸히 지내던 언니는 그 동생이 온다는 사실에 들떴습니다.  저희 집은 13평 남짓 한 방 두 칸짜리 다세대 주택입니다. 큰 방은 안방 겸 거실, 작은 방은 언니의 공부방으로 언니는 안방에서 생활하다 몇 달 전부터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다며  공부방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출근 한 사이나 함께 저녁을 먹을 때, 티비를 볼 때, 나갈 채비를 할 때 등등의 시간에는 예전처럼 큰 방을 오갔습니다.
 여하튼 언니는 그 친구가 오는 날 4시간가량 집안 대청소를 하며 그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그 친구는 사흘을 머물었는데, 첫날은 늦은 시간에 도착해 인사만 하고, 공부방에서 재웠습니다. 언니와 저는 조금 안방에서 함께 잤고요. 다음 날 역시 그 친구는 콘서트를 보고 새벽에 돌아와 공부방에서 잤습니다.
 문제는 토요일에 생겼는데, 그 날은 언니보다 일찍 귀국해 있던 다른 동생 한 명이 두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좀 사는 집 자녀인 그 동생은 점심으로 비싼 뷔폐를 먹자고 제안했고, 언니는 저도 함께 그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랬습니다. 금요일 밤, 언니는 제 몫까지 점심 예약해 놨다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솔직히 피곤했지만 기분 상하게 할 수 없어서 밥만 먹고 돌아오자 싶어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사건이 터졌습니다. 나갈 채비를 하며 들떠 있던 언니에게 제가 눈치 없이 카드 수수료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사실 함께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언니 몫의 다이어트 약값을 제가 지불해주었고, 그 할부 수수료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놀랐던 기억이 나 이야기를 했더랬습니다. 언니는 살짝 기분이 상해했고, 저 역시 이건 아니다 싶어 그냥 생각 나 한 말이라고 넘기려 했습니다.
 언니는 분위기 전환 삼아 오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러는 가운데 점심값이 장난이 아닌데, 제 몫은 언니가 사주는 것이며, 나머지 두 사람은 각출, 그 대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두 사람을 위해 언니가 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내일 스케줄까지 그 동생들을 위해 돈을 쓴다고 했습니다. 자기 아는 언니가 있는데, 언니는 당연히 동생을 챙기는 거라고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다고, 그래서 자기도 그 동생들을 챙겨주고 싶다고요.
 저는 그 이야기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솔직히 그 아이들에게 질투가 났고, 언니에게 섭섭해졌습니다. 유치하게도 이렇게 열심히 언니를 챙겨주는 나한테는 너무한다 싶었던 거죠. 그래서 즉흥적으로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전날부터 피곤하기도 했고, 상황을 보니 점심을 먹은 후 하루 종일 돌아다닐 것 같았기에 그렇게 마음이었습니다.
  왜 같이 가지 않느냐는 언니에게 ‘네가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안 가면 좋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싸늘하게 ‘내 돈이 걱정인 게 아니고 니가 불편해서 그런 거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또 마음이 상했지만 사실이 그러니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니 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하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했고, 언니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참아 넘기고 웃으며 나갔습니다.
 그 후 저녁에 술 마시러 나오라는 언니의 전화를 받았지만 비가 많이 와 귀찮은 마음에 집에서 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1시가 되어도 언니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요.
 저는 의례 그래왔듯 술을 마시고 있으려 했죠. 그리고 1시가 넘어도 오지 않기에 ‘2차를 하는구나’했고, 2시가 넘자 클럽에라도 들렀다 아침에야 오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언니가 자주 그러지는 않지만 워낙 인기가 많았기에 성인이 된 후에는 가끔 씩 필 받으면 밤새 놀다 오곤 했거든요. 그 때는 걱정이 되어 몇 번씩 전화를 걸곤 했는데,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잘 하는 스타일이라 믿거니 하게 되었던 겁니다. 어쨌든 그 날도 ‘아침에 오겠구나.’하고 여기며 선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 가까이 되어 돌아온 겁니다. 저는 선잠이 깨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 언니는 ‘더 놀아야 되니 같이 놀지 않을 거면 작은 방으로 가서 자면 안 되냐?’고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을 저인데,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원래 자던 큰 방에서 자게 되었고, 비켜 달라는 언니의 말도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원래 그 방에서는 잠을 잘 못자니 여기서 놀려면 놀아라. 나는 자겠다.’ 했습니다.
 당황한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같이 화를 내며 ‘뭐가 불만이냐?’ 했고, 저는 너무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무슨 말이든 해야겠기에 ‘전화를 왜 안 받냐? 늦게까지 놀 거면 미리 전화를 하던지 해 줘야 준비하지!’하며 맞섰습니다.
 언니는 그런 제게 ‘너야말로 평소에 들어오면 온다, 늦게 오면 늦는다고 전화하지 않잖아. 내가 그런 걸로 따지면 이해 못했잖아. 그래서 넌 그런 거 필요 없는 줄 알았지!’하며 ‘도대체 쟤들이 뭘 잘못했냐? 니가 자기들 불편해서 밥도 같이 안 먹고, 피하는 거 다 아는데, 니가 이 방에서 인상 쓰고 있으면 어디 불편해서 쟤들이 이 방에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며 ‘도대체 이해할 수 가 없다.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나 심기 불편하다‘ 표시 내며 자는 척이나 하고...’라며 화를 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섭섭해 ‘어디 나 이상한 거 하루 이틀이냐’며 ‘난 여기서 자야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누워버렸습니다.
 언니는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나가버렸고, 저는 그 말이 ‘어떻게 너 따위 게 나와 내 친구에게 이럴 수 있냐?’는 말로 들려 언니를 외면했습니다.
 그 이후 언니와 저는 한 달 간 말도 섞지 않고 지냈습니다. 마치 둘 다 하숙생처럼 자기 방에서 지냈죠.
 한 달이 지나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더군요. 그래서 먼저 사과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사과를 하려니 솔직히 언제나 늘 그랬듯이 또 먼저 사과를 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닥 잘못한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언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먼저 사과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잘못한 부분이 분명이 있었기에 사과의 편지를 길게 쓰고, 제가 잘못한 점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한 번 언니의 측근에게 언니의 힘든 상황(비밀)을 폭로해버린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었고, 그게 아니라도 언제나 언니의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고 어색하게 행동했으며, 언니가 그 친구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질투심이 생겨 부아가 나곤 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런 내용으로 편지를 이어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저 너에 대한 내 열등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색한 행동이 나왔고, 너의 측근들은 당연히 너의 편일 것이며 날 깔볼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벽을 세웠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의 시스터 콤플렉스가 문제였음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너와 네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필요하다면 그 친구들에게도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는데 찬물 끼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겠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껏 열심히 청소했는데, 집주인 행세 하며 마음대로 놀지 못하게 한 것 미안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록 지금은 이렇게 편지로 먼저 사과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내 입으로 제대로 사과하겠다며 편지를 마무리했지요.
 그 편지를 전한 날은 제가 일이 있어 늦게 들어갔기에,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언니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언니는 ‘네 말처럼 이런 일이 이번만 있었던 게 아니고 나는 너 때문에 너무나 상처를 많이 받아서 더 이상 그런 사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미안해서라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였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이대로도 좋다 싶은 마음에 ‘네 마음이 편할 대로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또 2주가 흘렀습니다. 찜찜하기는 했지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마음도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그 사이 오랜만에 혼자 부모님 댁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니, 오빠와 달리 부모님께 속내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 날도 자연히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고, 언니가 나에게 많이 섭섭해 하지만 나 역시 생활에 지쳐 더 이상 언니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언니도 불편해 보이지 않고, 나 역시 편안하여 당분간은 이대로 지낼 것 같다고요.
 그리고 며칠 지난 저녁에 언니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 다음날이 오빠네 둘째 아이를 보기 위해 가족이 모두 오빠네 집에서 모이는 날이었기에 언니 역시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언니 말이, 걱정이 되신 아버지가 언니에게 ‘동생이 사과를 하는데 받아주라’고 하셨다더군요. ‘왜 네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서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느냐’는 말과 함께 ‘그럴 수 있는 네가 부러운 거지, 그것 때문에 기분 나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억울하지 않도록 부모님께 이야기 할 때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바란다는 부탁도 했습니다. 언니와 저는 그렇게 말을 트고 오랜만에 같이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언니는 많은 생각을 했다며 10 여 년 전 저와 가까이 지내고부터는 친구를 사귀어도 항상 제 실수 때문에 친구들과 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랑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아 용서하고, 돌아가고, 또 받아주었다더군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네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건 다 내 탓. 그러니까 네 동생 탓인데 왜 멀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언니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걸 어떻게? 니가 그런 실수를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벽을 치게 되는데. 물론 전화도 하고 만나지, 하지만 예전 같지 않단 말야.’ 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감정이 복받쳤지만 ‘미처 그런 줄은 몰랐다.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만 혹시 또 내가 실수하면 날 다시 보지 말고, 그 친구에게 ’내 동생이 원래 좀 저렇다. 이상하지?‘하고 같이 시원하게 욕해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친구들 앞에서 가족 욕을 하라고?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 흉을 보라고? 그런 짓은 죽어도 하기 싫다. 그런 모습을 보면 친구들도 어떻게 생각하겠냐?’ 하더군요.
 속으로 좀 찔리긴 했습니다. 저는 언니와 함께 제 친구들을 만나 어색해지거나 하면 ‘우리 언니가 원래 좀 예민하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친구들은 그런 제게 ‘네가 그렇지. 친구 보다 늘 언니가 우선이지.’하며 제 편이 되어주었거든요.
 언니는 저와 달라 그럴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어떡하면 좋을까를 물었죠.
 그랬더니 ‘내 친구는 더 이상 네게 보여줄 수 없다. 그러니 네 친구를 내게 보여줘. 내가 네 친구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고, 그렇게 내 친구들에게 할 수 있도록 연습해 봐라.’ 하는 겁니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언니 자신도 제 친구들에게 그닥 잘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언니를 만나 본 제 친구들은 하나같이 언니를 도도하고 포스가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요. 오죽하면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언니 화난 거 아냐? 분위기 싸하다...... 아마 너는 평생 언니한테 못 이길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언니에게 너무 맞춰 주기만 하지 말라’고 할까요.
 이런 말이 튀어 나올 것 같은 걸 꼭 참고 ‘다음에 00이 오라고 해야겠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아는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라는 겁니다. 저는 그닥 대인관계가 좋지 않아 친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그룹에서든 트러블을 일으키진 않지만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잘 알아채지도 못할뿐더러 저 역시 먼저 다가가지 않죠.    어쩌면 제 세상의 중심에는 늘 언니가 있었기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니에게 더 의존했고, 인기가 많고, 그룹에 중심이 되는 언니를 부러워했고요.  그게 악순환이 되다 보니 누구를 만나도 모든 것을 언니 위주로 맞추려 했고, 그게 어긋나 항상 언니 친구와 트러블 아닌 트러블을 겪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언니의 말에 빈정이 상한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언니는 말을 이어 ‘네가 노력 해야 한다. 솔직히 네가 노력해도 내 상처가 치유될지 알 수 없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지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가족인 걸. 한 10년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노력하다 보면 되지 않겠느냐.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도록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잘 해라.’ 하더군요.    꼭 바람 핀 남편 용서해주는 분위기에 또 빈정이 상했지만 저는 ‘네 말이 맞다. 어렵게 한 번 더 참아주고, 또 기회를 줘서 고맙고, 앞으로 나도 잘 지내고 싶다. 더 잘 지내도록 노력하겠다. 20년 전보다 10년 전이 분명 나아졌었고, 지금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우리가 40대가 되면 더 좋아지지 않겠냐고 같이 노력하자.’고 했어요.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았는데 그 다음에 또 일이 벌어졌죠. 대화를 이어가다가 술이 조금씩 취해가면서 저도 모르게 제 생활의 어려움이며 내 자신의 무능함 등에 대해 언니에게 한탄한 게 화근이었어요.
 어떤 말에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경리 장부 정리를 하는데, 맨날 해도 늘지는 않고, 실수해서 혼나고 그럴 때마다 사장님한테 잘못했다고 해야 하고 뭘 해도 발전이 없고 나아지지 않는 바보 같은 한심한 인생이다 평생 사과만 하다가 죽겠다.’는 그 말쯤에 언니가 울컥했어요. 언니는 ‘노력 한다는 게 이거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며 휭 하니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전 너무 억울했어요. 일단 집으로 쫓아갔죠. 그리고 언니의 공부방 앞에서 또 사과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너랑 이야기하고 너무 흥이 나서 오바했나보다, 또 실수했나보다,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이죠.
 언니는 ‘내가 참고 참아 볼려고 해도 안 된다. 내가 다 굽히고 다 접고, 있는데 넌 그 자리에서 꼭 그런 자기 한탄을 해야 하느냐? 이야기했잖아. 트라우마라고까지 했잖아. 상처가 나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신경이 끊어질 듯 말 듯 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 가 있냐? 그런 이야기 들어 줄 마음 없거든. 이해 안 되거든?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모르겠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다 너 때문인데! 모르겠냐?’라고 했어요.
 여기서 제가 한 번 더 참고 포용했다면 달라졌을까요? 그런데 저는 그래지지가 않더군요. 소리를 질렀어요. ‘너만 참고 있는 줄 아느냐? 너만 힘드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너만 하는 줄 아느냐? 나도 힘들어 죽겠다. 숨 쉬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산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야하니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미안하다, 잘못했다, 죽도록 사과하면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산다. 왜 그렇게 네 생각만 하느냐?’고요.
 그랬더니 언니는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방에서 나가라‘며 절 밀쳐냈습니다. 방문을 쾅 닫더군요.
 저도 이성을 잃고서 ’이러다 진짜 미쳐 죽겠다‘고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렇게 시원하게 괴성을 질러본 건 생전 처음이었어요. 옆집 아주머니가 초인종을 눌러 무슨 일이냐고 ‘신고해드릴까요?’ 했을 정도로요. 제 괴성에 언니는 방 문 넘어로 ‘그래 죽어라! 죽어버려라!’ 라더군요.
 여기까지입니다. 그 후 또 말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불편하지는 않아요. 앞서 말했지만 마음은 자유롭기까지 해요. 그렇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가족인데 이러면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정신병인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멀쩡한데 둘이 같이 있으면 생기는 병인가 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언니는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저는 언니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서로 배려해 주지 않는다며 섭섭해 하고만 있다는 걸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사과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원망 받을 행동을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평생 그렇게 맞춰주며 죽을 때까지 죄인으로 살아야 할까봐 두렵습니다.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혹시 이상한건가요? 제가 정말 엄청 잘못하고 있는  걸가요?
 곧 있으면 집 계약이 완료되어 이사도 해야 하는데, 이대로 같이 사는 게 과연 좋은지도 의문입니다. 
[이 게시물은 사티어님에 의해 2011-04-27 13:58:56 공개상담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사티어님에 의해 2011-04-27 14:03:07 전체상담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2022 김영애가족치료연구소 All rights reserved.